[월드컵특집]도쿄대첩, 극적인 3분의 역전극!

2014. 6. 2. 05:56

도쿄에서 있었던 아시아 최종 예선, 일본과의 첫 경기는 한국 축구에게는 희망을 준 경기였다. 한국은 드디어 아시아의 벽을 넘어서 월드컵 16강을 이룰 수 있다는 꿈을 선수와 팬들 모두에게 심어준 경기이기도 하다.

 

 

1997년 9월 27일-최종 예선 3차전

 

일본 국기

 

이날 도쿄에 운집한 일본 관중들의 수는 대단했다. 이때의 축구 열기는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다. 한일전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과 월드컵 본선 진출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이 경기에 대한 관심을 폭발시킨 원인이기도 했다.

*90년대는 한일 정기전이 있을 정도로 인기몰이였다.

 

 

3.5장-아시아 배정 본선 진출 티켓 수

 

현재는 4.5장이다. 그런데, 이 한 장의 차이는 크다. 2개조로 편성되는 최종예선전에서 2위를 한다는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1998년 당시, 월드컵 최초로 32개 국가가 본선 진출을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아시아에 할당된 본선진출 티켓은 전 대회의 2장에 비해 1.5장이나 많아졌다. 경쟁은 더 치열했다. 최종전은 2개조로 편성되었고, ‘홈 앤드 어웨이’방식으로 바뀌었다.

 

 

무조건 1위를 해야 한다

 

2위를 하면 경우의 수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조 2위를 기록한 두 팀은 단판승부로 플레이오프 경기를 가진다. 이긴 팀은 본선에 진출한다. 그런데, ‘3.5’장이다.

 

아직 ‘0.5’장에 대한 희망은 남는다.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두 번의 경기를 가진다.

*오세아니아 팀과 경기를 갖게 되어 있었는데, 상대팀은 ‘호주’로 정해져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복잡한 경우의 수는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예선전에서 무조건 1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월드컵 본선보다 더한 열기

 

도쿄에서의 경기는 월드컵 본선 티켓과 직결된다는 생각 때문에 관심이 폭발적이었다. MBC에서의 단독중계 시청률은 50%를 넘었다. 2014년에 바라 본 그 때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킥오프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경기 자체가 재미있지는 않다. 선수들은 전투를 치르는 듯 했다. 너무 심하다 싶은 백태클도 자주 나왔다. 수비수는 공을 보는 게 아니라 선수를 보고 달려들었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심판의 관대함이었다. 옐로카드도 꽤 많이 나왔지만, 웬만한 반칙에는 휘슬도 불지 않았다. 경기의 흐름은 반칙으로 계속 끊기고, 양팀 모두 답답한 전반전을 마쳐야 했다.

 

 

 

실수로 빼앗긴 1점

 

후반전도 양상은 비슷했다. 하지만, 하나의 실수가 경기 양상을 바꿔버린다. 후반전 21분, 고정운 선수의 잘못된 판단으로 패널티 박스 근처에서 공을 빼앗긴다. 여러명의 수비수가 있었지만, 김병지 골키퍼가 앞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야마구치의 지능적인 로빙 슛! 스코어는 1:0, 경기장은 일본 응원단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드라마틱한 2점

 

1:1

거의 스페인전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페널티 박스 오른쪽에서 이기형 선수의 센터링, 최용수 선수의 헤딩 패스(?)에 이은 서정원 선수의 헤딩 슛은 골로 직결되었다. 1:1이라는 스코어는 거의 패색이 짙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과 응원단 모두를 열광하게 만든 건 당연했다. 후반전 38분 경이었다.

 

* 서정원 선수는 스페인전에 이어 극적인 골을 이끌어 냈다.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2:1

불과 3분 뒤, 드라마는 다시 쓰여졌다. 뒤에 쳐져 있던 이민성이 올라오며 패스를 받는다. 골대에서 거리가 꽤 멀었기 때문에 일본 선수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 틈을 노려 순간적으로 중거리슛을 날리고, 가와구치 골키퍼가 손 쓸 틈도 없이 골대 왼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간다.

 

94년 월드컵, 독일전에서의 홍명보 선수의 슛과 거의 유사했다. 공이 한 번 바운드 되었기 때문에 골키퍼가 방향을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었고, 손을 쓰기 거의 불가능한 절묘한 위치로 슛이 들어갔다.

 

 

이 날의 경기는 월드컵 본선 진출의 분수령이었다. 한국의 조1위를 위해서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승리는 짜릿했다.

 

 

도쿄대첩 후

 

잠실에서 열렸던 일본과의 2차전에서는 2-0으로 패한다. 사실, 파죽지세의 연승을 쌓아 나가던 한국이 조1위를 확정하고 벌어진 경기라 힘이 빠진 경기였다. 승부에 대한 집착도 약했다. 일본이 이긴 건 당연한 결과였다.

 

일본은 한국과의 경기 이후 사실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무승부가 많았고, A조 2위였던 이란과 플레이오프 경기를 하게 되었다. 연장전까지 가는 사투를 벌였다. 의외로 재미있는 경기였다. 결과는 일본의 3-2 승리,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을 최초로 이루게 된다.

*이때 당시, 이란의 골키퍼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교체할 수 있는 카드가 없어 억지로 골을 막아야 했고, 결국 패하고 말았다.

 

 

정리

 

파죽지세로 본선에 진출한 한국팀에 대한 기대는 어느때보다 컸다. 최종예선전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한국이 더 이상 아시아의 변방이 아니라는 믿음을 주었다.  최용수 선수의 골 결정력과 차범근 감독의 용병술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다. 드디어, 16강 진출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본선에서의 반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계속 이어집니다.

 

p.s)

가와구치 골키퍼

- 도쿄대첩 때 처음 봤던 일본의 가와구치 골키퍼, 한국의 여성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추억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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