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특집]한국 대 독일, 94년 미국월드컵

2014. 5. 26. 07:46

스페인과의 극적인 무승부로 달아올랐던 열기는, 볼리비아전의 답답한 경기로 다소 수그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16강 진출은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경우의 수가 있었다. 문제는 전 대회 우승국 독일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전략과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볼리비아 전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16강에 올라간다는 생각이었으니까!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서 와일드카드를 향한 도전에 나선다.

 

 

 

더위+체력

 


 

 

더운 날씨 속에서, 체력적으로 열세인 독일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독일 선수들은 이런 날씨를 접할 기회도 별로 없었다. 한여름에도 선선한 날씨를 보이는 독일의 기후 특성상 한국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섭씨 40도(1994년 6월 28일 새벽 5시 5분)

 

선수들멋을 전혀 부리지 않은 선수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경기가 진행된 댈러스 구장은 살인적인 더위로 선수들을 괴롭혔다. 현지시각으로 햇볕이 가장 강렬한 오후 3시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선수들은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1차전 상대인 스페인과의 경기는 현지 시각으로 저녁 6시 30분에 시작되었다. 해가 지며 그늘이 만들어졌고, 생각보다는 덥지 않았다.

 

독일의 평균 나이 30.6세

 

독일 선수들한 시대를 풍미한 '마테우스'가 가장 우측에 보인다. 월드컵 당시, 과자 '치토스'에서 그가 있는 스티커를 찾으면 횡재한 것이었다!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독일은 ‘녹슨 전차군단’이었다.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독일의 선수들은 더 이상 날카롭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보다 실력이 한 수 위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전반전-독일의 승

 


 

 

독일은 화려한 개인기를 갖고 있는 팀이 아니다. 공격의 패턴이 다양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확한 패스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상대팀의 수비를 무너뜨린다. 이는 94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조직력 대 조직력의 싸움이었다.

*정교함에서는 당연히 독일이 훨씬 앞서 있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독일이 한국을 압도한 건 아니다. 하지만, 스코어는 3:0. 여기에는 독일의 강력한 스트라이커의 역할이 컸다. ‘금발의 폭격기’라는 별명의 ‘위르겐 클린스만’이 있었다. 전반전의 3골 중 2골은 그의 발끝에서 나왔다. 첫 골은 그의 클래스가 한국보다 한수 위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골대를 등지고 받은 패스를 순간적인 터닝슛으로 연결시키는 장면은 상당히 예리하다. 전반전 11분 47초였다. 아쉬운 건 독일의 몇 번 안되는 패스에 와해되는 장면이다. 클린스만이 슛을 넣는 동작에서는 수비수가 월등히 많지만, 선수에 대한 압박이 전혀 없다. 저런 각도에서는 터닝슛이 불가능하다고 느꼈음에 분명하다.

*현재, 미국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클린스만 슛

 

 

2골은 독일의 실력이 아니었다

클린스만의 첫번째 골로 한국팀이 위축 되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안타까웠다. 전반전 19분 경, 독일 공격수는 넘어지며 슈팅도 센터링도 아닌 어정쩡한 볼을 문전으로 보낸다. 골키퍼 최인영은 공을 잡지 못했고, 왼쪽 골대를 맞고 나온 공은 별 생각 없이 서 있던 ‘리들레’라는 선수에게 연결되어 골을 허용한다.

 

어이없는 볼 주워먹기

 

세 번째 골은 ‘클린스만’의 수준과는 전혀 상관 없었다. 오른쪽 페널티 에어리어를 약간 벗어난 곳에서의 프리킥과, 크게 원바운드된 공을 땅볼로 연결한 슈팅은 전혀 위력이 없었다. 골키퍼의 위치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집중력이 떨어진 탓인지 전혀 손쓰지도 못하고 골을 허용했다. 확실한 실수였다. 전반전 37분이었다.

 

허탈함 아쉬운 골

 

 

이운재 골키퍼

후반전에 결국 골키퍼가 교체되었다. 그는 프로축구에 데뷔하지도 않은 대학생, 22살의 이운재 선수였다. 경기력은 상당히 좋았다. 후반에도 독일의 예리한 슈팅이 몇 차례 있었지만, 그의 판단력은 좋았고,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이운재 골키퍼가 나왔다는 것을 몰랐다. 94년 월드컵 이후, 주전 국가대표 골키퍼는 ‘김병지’였기 때문이다. 김병지 선수보다 어린 이운재 선수의 국가대표 데뷔가 훨씬 빨랐다.

*2002년부터 이운재 선수가 골키퍼로 맹활약한 것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90년대는 ‘김병지 선수’의 시대였기 때문에 94년 월드컵에 이운재 선수가 나온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운재94년 출전 당시

 

 

 

 

후반전-한국의 승

 


 

지금봐도 너무 아까운 경기였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더위에 약한 ‘노쇠하고 장신’인 독일 선수들은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한국에게는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이 때부터는 한국이 경기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3:2가 된 다음부터였다.

후반전 7분

중앙선 근처에서 드리블하며 공격의 기회를 엿보던 박정배 선수는, 페널티 에어리어 왼편에 있던 황선홍에게 정확한 공간패스를 연결한다. 골키퍼와 1:1 찬스! 황선홍 선수에게 달려드며 골키퍼는 넘어지고, 이를 미리 예측해 공을 띄워 상대방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는 절묘한 슈팅! 스코어는 3:1, 한국은 아직 배고팠다.

 

황선홍 슛 황선홍 카리스마

 

후반전 17분 53초

왼쪽 윙 고정운의 센터링, 헤딩으로 공을 쳐 내기에 급급한 독일 선수, 이 공이 떨어진 곳은 수비에서 올라온 홍명보의 바로 앞이었다. 골대와의 거리가 25m로 꽤나 멀었다. 하지만, 그는 중거리 슛을 시도한다. 독일 수비수가 그에게 미쳐 다가가기 전이었다. 오른쪽 구석으로 절묘하게 빨려들어가는 슛은 골키퍼가 전혀 막을 수 없는 각도였다. 스페인전에서 있었던 프리킥이 떠오르며 홍명보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의 점잟은 세러모니도 볼 수 있었다.

 

홍명보 슛 골인

 

한국, 압도하다

독일은 더 이상 전차군단이 아니었다. 3:2의 상황부터는 완히 한국의 파상 공세였다. 시간이 갈수록 더했다. 독일 선수들의 체력은 바닥나 있었고, 패스의 예리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은 계속해서 문전을 두드렸다. 아쉽지만, 한국도 예리함은 부족했다. 계속해서 독일의 문전을 두드렸지만, 독일의 전면 수비와 골결정력 부족으로 애간장만 태웠다. 잡힐 듯 말듯 하는 골은 계속해서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프리킥

 

마지막 프리킥 날아간 기회

 

후반전 47분에 얻은 마지막 프리킥은 아직까지 기억에 선하다. 스페인전에서 나왔던 홍명보 선수의 기적을 간절히 염원했다. 하지만...독일 선수의 발에 맞고 튕겨져 나가는 공...심판은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울린다. 필자가 본 월드컵 경기 중 가장 아쉬운 장면이었다.

 

 

 

잘 싸웠다

 


 

 

한국의 투지가 빛나는 경기였다. 지금도 이때의 흥분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은 왜 그때처럼 재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감정이 메말라서일까? 이번 월드컵에서는 다시 한 번 설레임을 느껴보고 싶다.

 

p.s)

사실, 비겨도 16강에는 진출할 수는 없었다. 6개조(A~F조)에서 3위를 한 나라 중, 4팀이 와일드카드로 출전 가능했다. 경기 결과, 한국은 비겼더라도 6위로 꼴찌였다. 하지만, 비기기만 했더라도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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