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 전
네덜란드 전은 멕시코전의 패배로 인해 절대 질 수 없는 경기였다. 하지만, 기대를 하기에는 전력차가 너무 컸다. ‘골리앗과 다윗’의 경기였다. 국민들은 실낱같은 희망으로 네덜란드전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 경기를 기억하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다. 너무 무기력한 경기였다. 필자가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벨기에와의 마지막 경기에 대한 배경설명이기 때문이다.
오렌지색의 물결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 구장에는 오렌지색 밖에 보이지 않았다. 유럽에서 치러지는 경기인 만큼 네덜란드 관중들이 대부분이었다. 전 경기에서 위축되었던 한국선수들은 심적으로 더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무승부+속공’ 작전
전력차가 너무 컸던 이 날의 경기에서, 한국의 작전은 무승부였다. 솔직히 비기기 전략은 쉽지 않다. 공격수가 어디로 패스를 할 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수비수는 더 많이 뛰어야 한다. 체력적인 소비가 크다. 상대방이 월등히 높은 수준의 공격수라면 더 큰 문제다. 수비수는 그를 막기 위해 한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다. 결국 이런 전략은 첫 골의 빌미를 제공하는 원인이 되었다.
한국은 수비에 치중하며 속공 작전을 펼친다. 그 중심에는 서정원이 있었다. 프랑스에서도 ‘바람의 아들’이라는 애칭과 함께 경기 전 관심을 많이 받았다. 문제는, 공격의 숫자가 턱 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만큼, 덩치가 큰 네덜란드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밀려, 빠른 발을 쉽게 이용할 수 없었다.
패스 성공률의 차이
예리함이 없었다. 한국의 속공이 살아나려면 패스의 정확성이 생명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계속 끊기기만 할 뿐 답답한 경기는 지속되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조롭고 부정확한 패스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2002년 4강 신화 이후, 대표팀의 질적 향상에 비해 축구팬들의 보는 눈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2년 이후, 한국 축구에 대한 인기는 더 떨어졌다.(개인적인 생각임.)
토탈사커
네덜란드는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탈사커로 유명하다. 98년의 경기가 꼭 그랬던 건 아니지만, 얼핏 보면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와 유사한 스타일이다. 롱패스보다는 짧은 패스가 잦다. 2대1패스를 통해 수비수를 유린하며 슛으로 연결한다. 수비수의 힘을 더 빼놓는다.
이는 토탈사커의 원조,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기와 정확한 패스력이 뒷받침 된 다음에야 가능한 축구 형태라 할 수 있다.
히딩크 감독
이 때 당시, 네덜란드의 감독은 너무나 잘 알려진 ‘서울 명예 시민, 히딩크’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보여줬던 축구 스타일도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한국에게 가장 치욕적이었던 경기의 감독이, 4년 후에 가장 영광스런 승부를 안겨줬다니!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데니스 베르캄프
98년 월드컵 당시, 가장 주목받는 스트라이커는 단연 네덜란드의 ‘베르캄프’였다. 최전방 공격수였던 그는 슛을 넣는 능력만 아니라, 경기를 조율하고, 다른 선수들에게 슛을 만들어주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 이 날의 그는 한국 축구팀을, 완전히 뼈까지 발라먹는다!
5대 0
한국의 전략적 실패보다는 네덜란드 팀 전체가 너무 잘했다. ‘베르캄프’의 능력이 유난히 빛났다. 이는 경기 당시의 해설을 들어보면 잘 알 수 있었다.
한국 수비수들은 네덜란드의 ‘코쿠’ 선수를 놓치며 첫 번째 골을 허용했다. 이는 베르캄프의 지능적인 플레이 때문이었다. 골을 받는 척, 페널티 에어리어 깊숙한 곳으로 침투하던 그는 수비수 두 명을 데리고 들어간다. 수비수가 한 쪽으로 몰리다 보니 ‘코쿠’를 놓쳤고, 골키퍼 김병지가 전혀 손 쓸 수 틈도 없이 골대 오른쪽 구석으로 강력한 슛이 빨려 들어간다.
해설자는 이런 한국 수비수들을 질타한다. 베르캄프에게만 수비가 쏠리며 코쿠에게 완벽한 찬스를 줬다는 것을 아쉬워한다.
*코쿠는 현재, 박지성 선수가 뛰었던 'PSV 아인트호벤‘의 감독이다.
세 번째 골은 후반전 25분 경, 베르캄프에게 헌납한다. 수비수들이 베르캄프에게 몰린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이 날의 경기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의 아르헨티나전과 양상이 유사했다. 메시 선수의 골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의 존재감이 4대1이라는 스코어를 만들었다. 메시를 마크하다 보니, 세 골을 몰아 넣은 ‘이과인’ 선수에게 찬스가 많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완패였다.
들끊는 여론
네덜란드 전 당시, 해설 자체는 차범근 감독에 대한 문제를 계속해 꼬집었다. 무승부 전략, 선수기용, 전술적인 문제까지 총체적인 실수였다고 결론지었다.
*일본은 3패를 했지만,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 같은 강팀에게 1점 차로 석패했던 것과 비교해 더 여론이 들끓었다. 한국이 네덜란드에게 5대 0으로 질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국, 프랑스 월드컵은 선수들이나 감독에게 지옥을 맛보게 했다. 그 수준이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가혹했다.
감독 경질
94년 미국 월드컵에 이어 희생양이 필요했다. 네덜란드 전이 끝나고 프랑스에서 감독이 경질되는, 한국 축구사에 있어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차범근 감독은 죄인처럼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이 다음이 문제였다. 차범근 감독은 한국 프로 축구의 ‘승부조작’에 대한 언급을 했다. 안타깝지만, 그에게 불리한 상황이라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자신에게 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발언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한국 축구에 대한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경기력이 향상된다는 그의 신념이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결과는?
축구협회의 진상조사 결과, 승부조작은 전혀 없었다고 결론이 났다. 차범근 감독은 한국의 비난 여론에 못 이겨 중국행을 택했다. 부상으로 뛰지 못했던 황선홍 선수도 자신을 보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일본행을 결심했다.
but, 승부조작은 진실이었다
13년이 걸렸다. 2011년, 프로축구의 승부조작 문제는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고,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갑자기, 미드 ‘뉴스룸’의 리뷰에서 썼던 예시가 생각난다.
People choose the facts they want now.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실만 받아들인다!)
→ 언론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시청자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정리
네덜란드전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경기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기 힘들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그만큼 여론은 들끓었다.
하지만, 만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남아 있었다. 벨기에와의 3차전!
-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월드컵 경기!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골키퍼, 김병지
네덜란드의 파상공세 속에서 가장 빛났다. 이 때 당시, 월드컵 출전 골키퍼 중 2번째로 가장 낮은 실점율을 보였다고 한다. 5점이나 내줬는데, 갸우뚱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 전에서만 27개의 슛팅을 막아냈다.
*‘5/유효슈팅’으로 계산하면 실점율은 아주 낮아진다.
프랑스의 유명 스포츠 잡지에서는 98년 월드컵, 한국의 최고 선수에 ‘김병지’ 선수를 선정하기도 했다. 98년 말에 있었던 프로축구 플레이오프 경기에서는 연장전, 극적인 헤딩골로 파라과이의 골 넣는 골키퍼, ‘칠라베르트’와 비교되며 전성기를 누렸다.
★이동국 선수, 월드컵 최연소 출전!
네덜란드 전에서 후반 33분 교체 출전한 이동국의 경기력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후반 35분의 위협적인 중거리슛과, 코너킥을 헤딩으로 연결하는 모습은 힘이 빠진 한국 대표팀에서 유난히 돋보였다. 이 때 그의 나이는 만 1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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