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프랑스월드컵]한국 대 벨기에-후반전
[98년 프랑스 월드컵]
한국 대 벨기에
(후반전)
내 생애 최고의 월드컵 경기
* 이전 글에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링크-> 2014/06/15 - [추억/월드컵] - [98년 프랑스 월드컵]한국 대 벨기에, 내 생애 최고의 경기!
한국 대표팀은 후반전의 시작과 동시에 2장의 교체카드를 쓰며 변화를 꽤한다. 이 날의 수훈갑, 이임생 선수가 교체선수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 2장의 의미는 상당히 컸다. 대한민국 선수들을 전장에서 싸우는 전사의 모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교체할 수 있는 선수는 한 명 뿐이었다. 체력적으로 2배 이상 뛰어 다니는 한국 선수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라운드에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후반 26분, 드디어 한국의 골이 터졌다. 페널티 박스 왼쪽으로 파고들던 고종수는 상대방의 반칙을 만들어낸다. 프리킥은 ‘왼발의 달인’ 하석주! 문전을 쇄도해 들어가는 유상철은 미끄러지듯 넘어지며 오른쪽 발을 앞으로 갖다 댄다. 공은 가까스로 발 끝에 닿으며 골대를 향해 빨려 들어간다.
선수들의 벼랑 끝 전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너무 힘들게 들어갔기 때문에 한 골은 어느 때보다 소중했다.
몸을 불사르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경기에 출전한 6명의 벨기에 선수가 30대를 넘었기 때문에 체력적인 면에서는 한국이 한 수 위라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벨기에 선수들의 신장이 한국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덩치가 큰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부상자는 속출했다. 더 뛰어다니다 보니 종아리에 쥐가 나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상헌 선수
멕시코, 네덜란드 전에서는 보지 못했던 낯선 선수가 있었다. 강한 인상의 얼굴에 다부진 체격이었다. 그는 24살의 수비수, 이상헌 선수였다. 벨기에의 선수들을 육탄방어 하며 비춰지던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발길질에 얼굴이 차이고, 종아리에 쥐가 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결국 마지막 교체카드로 그라운드에서 떠난다.
김태영 선수
2002년, 이탈리아와의 16강 경기에서 코뼈가 부러지기도 한 김태영 선수는 이 경기의 주전 멤버였다. 후반전 27분, 페널티 박스 안쪽에서 공을 경합하던 김태영은 쓰러지며 고통을 호소한다. 이미, 오른쪽 무릎은 붕대를 감고 있는 상태였다. 충격은 계속해서 누적되었다.
오른쪽 무릎 상태는 더 악화되고 있었다! 공중볼 다툼에서, 왼쪽으로 쏠려 내려오며 또 다시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만다. 안타깝지만, 교체할 수 있는 카드는 더 이상 없었다.
하석주 선수
후반전 18분 경이었다. 벨기에 선수 2명의 속공! 수비수는 이임생 선수 단 1명이었다. 골이나 마찬가지인 위기였다. 그때, 멀리서 전력질주를 하며 뛰어오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하석주 선수였다. 벨기에 선수에게 몸을 날리며 가까스로 실점 위기를 막아낸다. 대략 4~50미터는 미친 듯이 뛰어온 것으로 보였다. 경기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상황에서 그가 막아낸 한 골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전의(戰意)를 상실하게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국을 구해냈다.
이 날 그라운드를 가장 많이 뛴 선수는 단연 하석주 선수였다. 멕시코 전에서의 퇴장, 네덜란드 전에서는 벤치만 지키고 있어야 했던 그의 심정은 누구보다 더 간절했음에 분명하다. 그만큼 더 최선을 다했던 경기다.
이임생 선수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었다. 수비수, 이임생 선수다. 헤딩으로 공을 쳐 내려던 그는, 벨기에 선수와 부딪히며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다.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붕대를 감을 때 절규하는 듯한 그의 모습! 바로, 사생결단을 각오한 전사(戰士)의 모습이었다. 더 이상 축구 경기가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싸우는 진짜 혈투였다.
*이 장면은 애국가에도 나오게 된다.
하얀색 붕대를 감은 그의 모습은 TV에서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고통을 참아내며 헤딩을 하는 그의 모습은, 보는 사람도 가슴 아프게 했다.
*후반 막바지 무렵에는 답답한 붕대를 벗어던지고 경기를 하려 했지만, 다시 피가 낭자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한 번 더 가슴을 울렸다.
처절했다
이 날은 유독 수비수들의 수난이 많았는데, 벨기에의 공격이 만만치 않았음을 증명한다. 한 수 아래였던 한국 선수들은 몸으로 모든 공을 막아냈다. 이는 후반 43분경, 벨기에의 슛을 몸을 던지면서까지 막아내는 수비수들의 모습에서도 확실히 보여준다.
김태영, 이임생, 유상철 선수가 차례대로 쓰러지며 벨기에 선수의 슛을 막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한국 수비의 활약이 인상 깊었던 경기였다.
12번째 선수, 붉은 악마와 코카콜라 777응원단
본선에서의 세 경기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이라는 응원소리가 들렸던 경기다. 이는 코카콜라에서 대대적인 추첨 행사로 뽑은 777명의 한국 응원단이 합세했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주변에도 추첨에 뽑힌 운 좋은 사람이 있었지만, 사실 부럽지 않았다. 네덜란드 전에서의 참패로 굳이 ‘프랑스까지 가서 봐야 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벨기에와의 경기가 끝나고는 부러워해야 했다!
이 날의 응원단은 후반전, 벨기에 골키퍼의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었다. 유상철 선수의 짜릿한 동점골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친숙한 북소리와 한국 응원단의 함성만이 기억에 남는다. 후반전에는 벨기에 응원단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16강도 진출하지 못하는 한국 선수들의 투혼을 보며 아예 질려버렸을 수도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1승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진심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낀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국 응원단은 계속해서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아름다운 경기를 펼쳐 준 선수들에게 환호했다. 선수들도 응원단에게 인사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국의 비난 여론도 온 데 간데 없었다.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다. 경기 시작 전까지도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던 국민들은 이 한 경기로 모든 것을 용서했다.
정리
결과보다 과정이 값지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경기
결과는 1:1, 승자는 없었다. 전쟁을 치룬 듯 두 팀 모두 힘에 겨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잘 싸웠다. 한국 선수 뿐만이 아니다. 벨기에 선수들도 잘 싸웠다. 한국은 승리하지 못했고, 벨기에는 16강에 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 나라의 선수들은 누구보다 값진 경기를 치뤘다!
* 경기가 끝난 후, 벨기에 선수와 김병지 선수가 악수하는 장면은 아름다웠다.
p.s)
사실, 98년 월드컵에서의 언론과 국민의 비난은 너무 심했다.
벨기에 전에서 선수들은 더 열심히, 미친듯이 뛸 수 밖에 없었다. 피를 흘려가며, 자신들의 몸이 망가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번만큼은 선수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 축구는 세계적인 수준이 아니다. 월드컵 본선에 오른 나라들 중, 최약체다. 결과가 안 좋다면 열심히 뛰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실력이 안 돼서 그럴 확률이 높다.
필자는 마음을 비웠다. 월드컵을 편하게 즐기려 한다. 세계적인 강팀들의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니까!
'Review > 월드컵' 카테고리의 다른 글
[98년 프랑스 월드컵]한국 대 벨기에, 내 생애 최고의 경기!(전반전) (0) | 2014.06.15 |
---|---|
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 전 (0) | 2014.06.08 |
98년 프랑스월드컵, 멕시코전 (0) | 2014.06.08 |
[월드컵특집]도쿄대첩, 극적인 3분의 역전극! (0) | 2014.06.02 |
[월드컵 특집]한국 대 독일, 94년 미국월드컵 (0) | 2014.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