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특집]도하의 기적, 94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

 

한국 축구의 역사는 2002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한일월드컵의 4강 신화는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 축구 선수의 해외진출이 많아지고, 그 수준도 90년대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다. 그런데, 축구 자체에 대한 인기는 더 낮아졌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월드컵 때만 대한민국을 외친다. 이는 축구에 대한 수준보다도 관객들의 보는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스타 플레이어가 즐비한 프리미어리그를 보다보면 정작 한국 축구에 대한 실망이 커지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진다.

 

90년대는 달랐다. 정기적인 한일전, 월드컵에서의 1승을 위한 몸부림은 그 자체로 설레고 박진감 넘쳤다. 또한 본선 진출을 위한 아시아 예선 경기는 월드컵을 뛰어넘는 재미를 주었다. 94년도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극적인 드라마였다.

 

 

94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

 

---

 

이때 까지만 해도 아시아는 축구의 변방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현재의 32개팀이 참가하는 월드컵 본선과는 달리 24개팀이 진출하는 것도 차이가 있었다. 그만큼 대륙별로 배정된 티켓의 수는 상당히 적었다.

 

 

2장의 티켓                                                           

예선 자체가 월드컵의 축소판이었다. 월드컵행 시험 경쟁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아시아 30개국이 참여한 1차 예선에서 한국은 4조에 속해 조 1위로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그런데, 최종예선에 올라온 팀들이 모두 무시못할 수준이었다. 한국 축구는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했지만, 정말 자처만 했을 뿐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의 중동 축구는 무시 못할 상대였다. 일본은 한수 아래라고 판단했지만!

  

카타르 도하의 날씨, 5-10월(여름): 27-45℃(다습한 혹서)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최종 예선전에는 6개팀이 참가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무식했다. 합숙 훈련도 아닌데, 1993년 10월 15일부터 10월 28일 까지 5경기를 마쳐야 했다. 현재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자국과 상대국을 오가며 상당한 시간을 두고 경기를 하는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당연히, 선수들의 체력적인 문제가 큰 변수였다. 

 

이겨도 2점 

 

---

 

승리와 무승부의 승점차는 단 1점이다.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국가도 없었다. 마지막 경기 전까지 2승을 차지한 나라는 이란이 유일했다. 아이러니 하지만, 승리를 해도 2점 밖에 얻지 못하고 2승2패라는 극단적인 결과였던 이란은, 사우디에게 패하며 끝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참조:199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출처:위키백과)

경우의 수

승점 차가 거의 없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북한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경우의 수에 따라 월드컵 티켓을 거머쥘 수 있는 상황이었다. 1993년 10월 28일에 열린 마지막 경기는 국가 간의 담합을 막기 위해 같은 시간에 경기가 치러졌다. 

한국의 경우의 수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북한과의 경기에서 무조건 2점차 이상으로 이기고, 일본은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비기거나 져야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을 할 수 있었다. 일본의 경기와 상관없이 사우디의 경기 결과에 의한 경우의 수도 따져봐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이라크에게만 이긴다면 월드컵 첫 본선 진출을 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일본 축구의 성장

 

---

 

이때 당시만 해도 한국은 일본 축구를 한수 아래로 판단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모두 한국이 우세했다. 86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 당시, 일본에게 내리 2승을 따내며 본선 티켓을 획득한 전례도 있다. 그만큼 믿음이 있었지만, 1993년 10월 25일, 1:0으로 뼈아픈 패배를 맛본다.

한국은 1954년에 처음 경기를 가진 이래 일본과의 월드컵 예선 전적은 7승 3무로 대한민국은 일본에 대해서 승률이 매우 높았었다. (출처:도하의 기적, 위키백과)

 

 

일본 축구의 선봉장, 미우라 가즈요시 

 

 

한국에 패배를 안긴 한 골의 주인공은 일본의 국민축구 선수, 미우라 가즈요시였다. 일본에서는 한국에서의 박지성 선수 인기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브라질 유학파 출신으로 수준급의 실력을 갖고 있었던 그는 일본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브라질 유학붐을 일으키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실, 미우라는 일본이 축구에 엄청난 투자를 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스타다. 해외 선수를 귀화 시켜서까지 자국의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고 했던 시절이다.

 

이때, 한국에서는 ‘미우라’를 정말 싫어했다. 언론이 유도한 측면도 있지만, 한국 축구와 라이벌 구도를 만들게 한 결정적인 선수인 그를 좋아할 수 없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얼굴은 야구선수, 이치로를 빼닮았다.

 

현재 그는 놀랍게도 현역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67년생(만 47세)인 그는 요코하마FC에서 활약 중이다. 지난해에는 정규리그에서 18경기에 출전해 2골을 터트렸다고 한다. 아직 감이 오지 않는 분들을 위해 한마디 덧붙이겠다. 현(現)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인 홍명보보다 2살이 많다. 대단한 선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태풍의 그라운드’라는 애니메이션은 1994년, SBS에서도 방영한 적이 있다.

 

북한의 딜레마

 

---

 

예선전의 첫 상대였던 이라크를 3:2로 이기며 북한의 실력은 꽤나 괜찮은 수준을 보였다. 하지만 체력이 문제였다. 3일마다 경기를 치루는 강행군, 그리고 선선한 북한의 기후와 달리 도하의 찌는 듯한 더위는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하게 했음에 분명했다. 결국 세 번째 상대였던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3:0으로 지고 말았다.

한국과의 경기

너무 오래되었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전혀 흥미 없는 경기였다. 한국은 너무 손쉽게 이겼다. 2골차 이상을 내야만 했던 벼랑끝 승부였는데, 우습게 3골을 넣었다. 북한은 탈락이 확정된 상태였다고 하지만, 골을 넣는 영상을 보면 북한 선수들은 전혀 적극적이지 않다. 결과는 3:0으로 한국의 승리였다.

 

도하의 기적

  

---

 

한국의 시청자들은 더 이상 북한과의 경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막으로 나오는 일본과 이라크의 경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1:0으로 이기고 있던 일본이 동점을 허용해 1:1, 다시 일본이 한골을 넣어 2:1로 이기고 있었다. 종료 10초 전 까지는!

코너킥 상황에서 이라크의 ‘자파르 옴란 살만’은 극적인 동점골을 만든다. 월드컵 최초 본선 진출의 눈 앞에서 일본은 고개숙여야만 했다. 이를 일본에서는 ‘도하의 비극’이라 부른다. 재미있게도 동점골을 넣은 이라크 선수는 한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초청해 환영행사까지 가졌다.

 

 

 

경기 후의 반응                                                            

경기에서는 3:0으로 이겼지만, 한국 선수들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북한의 동포들과 악수를 나누며 어깨를 떨어뜨리고 경기장을 나오던 중, 극적인 낭보를 듣게 된다. ‘자파르 옴란 살만’의 동점골!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인 일본선수들의 반응이 TV에서는 같이 비춰졌다. 그때는 필자도 너무 기뻐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일본인들의 마음도 십분 이해가 된다, 다 잡았던 고기를 놓친 기분을!

 

 

 

본선에서의 선전

 

---

 

한국인들에게 ‘도하의 기적’은, 더 큰 기쁨을 주기 위한 서막이었다. 16강에는 진출을 못했지만, 2002년을 제외하고 가장 재미있었던 한국 축구의 도전사, 미국월드컵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p.s)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90년대에는 중동의 약진이 상당히 인상 깊었던 시기다. 한국은 일본과의 경기에만(?) 민감했지만, 중동의 강호에게 번번이 좌절을 맛봤다.

중동은 특유의 개인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남미 축구에 더 가깝다. 사우디아라비아는 94년 월드컵 본선에서 16강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란은 98년 월드컵에서 한국보다 먼저 승리를 따낸 나라다.

94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vs벨기에’전에서 나온 골은 압권이다. ‘사막의 마라도나’라는 별명을 가진 ‘사이드 알오와이란’은 중앙선 전부터 수비수 4명을 제치며 단독 돌파해 골을 기록했다. 이는 월드컵 베스트 골로도 뽑힌 기가 막힌 장면이다. 이 장면은 꼭 보기 바란다. 지금봐도 명불허전이다.

링크: ‘알오와이란’의 골 장면(출처:유투브)